미국 대선에 영국 도박사들이 수천만원을 건 이유
11월 3일 치러지는 미국 대통령 선거에 대한 관심이 영국에서도 뜨겁다. 선거 도박이 합법인 영국에선 도박사들이 꼽은 승리 후보와 판돈 규모가 민심을 가늠하는 척도로 여겨진다.
이번 미국 대선에 돈을 건 영국인들은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 중 누구의 승리를 예측하고 있을까.
'정치적 신념은 필요없다'…냉정한 도박사들
IT 업계에 근무하는 프로 도박사 다니엘 휴즈는 자신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영국 보수당 승리, 트럼프의 대선 승리 등을 지지하진 않았지만, 돈이 되는 결과에 베팅해 돈을 벌었다"고 전했다.
그는 2016년 미국 대선에선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부 장관의 승리에 돈을 걸었지만, 선거 결과가 발표되기 시작했을 때 방향을 틀어 2만6000파운드(약 3800만원)를 벌었다고 했다. 당시 미 연방수사국(FBI)이 클린턴 전 장관의 이메일 스캔들을 수사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선거판이 바뀔 것을 직감했다고 한다.
다니엘은 소셜 미디어와 인터넷 매체를 통해 표출된 작은 의견도 귀 기울여 들었던 게 주효한 전략이었다며 "사람들이 감정에 기반해 베팅하는 점을 이용해 돈을 벌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올해 대선에서 총 베팅액 3만파운드(약 4400만원) 중 상당 부분을 바이든 후보 승리에 걸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겨도 버는 돈이 있도록 '분산 베팅'을 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8년 경력의 프로 도박사이자 정치 분석가 폴 크리슈나무티는 "바이든 승리를 완전히 자신한다"며 바이든 당선에 1만4000파운드 (약 2000만원)를 걸었다고 밝혔다. 그는 자신의 예측이 맞으면 순이익으로만 1만5000파운드(약 2200만원)를 얻고, 틀리면 베팅 금액을 모두 잃게 된다.
하지만 선거에 돈을 거는 사람들이 모두 폴과 다니엘 같이 큰 돈을 거는 것은 아니다. 영국 베팅 업체 래드브로크(Ladbroke)의 매튜 샤딕 선거 도박 팀장은 대부분 사람들은 25파운드(약 3만6000원) 정도를 재미 삼아 선거에 돈을 건다고 말했다.
샤딕 팀장은 또 트럼프가 뒤처지고 있는 현재 여론 조사 결과와는 다르게 자사의 2020년 미 대선 도박 고객 중 약 75%가 트럼프 대통령의 재당선에 돈을 걸었다고 밝혔다.
샤딕 팀장은 대부분 베팅이 개인적 선호에 바탕을 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보편적인 사람들은 프로 도박사들과는 달리 자신이 선호하거나 지지하는 후보의 승리에 돈을 걸고 있다는 것이다.
2020 미국 대선, 선거 도박 '왕중왕전'
래드브로크는 영국 밖에서 모인 판돈까지 합치면 이번 미국 대선에 약 10억파운드(약 10조5000억원) 이상이 모일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2016년 대선 판돈의 2배 수준이다.
샤딕 팀장은 이렇게 큰 돈이 모이는 게 트럼프 대통령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데다가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은 사람이니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그는 한 명이 승자면 또 다른 한 명은 패자가 될 수밖에 없는 미국 대선 시스템도 대선 도박 흥행의 이유라고 봤다.
영국 노팅엄 트렌드 대학교에서 도박 및 정치 예측 리서치 센터장을 맡고 있는 리턴 보건 윌리암스 교수는 진보와 보수 진영 간 갈등이 심각한 시기일수록 "오히려 자신의 신념에 반하는 곳에 돈을 걸어야 한다"고 밝혔다.
상대와의 갈등이 너무 큰 나머지 반론은 듣지 않으면서 자신의 신념에 지나치게 빠져 실수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5년간 서방 세계의 정치 지형이 뒤바뀐 것도 선거 도박에 관한 관심이 높아진 이유라는 분석이 나온다.
2016년 영국인들은 브렉시트를 선택했고, 그해 미국인들은 도널드 트럼프를 대통령으로 뽑았다. 모두 전문가들의 예상을 크게 빗나간 결과였다.
폴은 "2016년을 기점으로 선거 도박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고 밝혔다. 그는 "일부는 전문가보다 자신의 예상이 더 적중했다는 걸 증명하길 원하는 듯 선거 도박을 한다"며 지식인층에 대한 불신이 도박으로 표출된다고 분석했다.
샤딕 팀장은 통상적으로 도박은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지만, 선거 도박엔 여성 고객들도 조금씩 주머니를 열고 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고 설명했다.
길거리 널린 베팅샵들…우려도
문화적 이유 외에도 제도적인 관점에서도 영국이 도박에 지나치게 관대하다는 견해도 있다.
과거 영국에서 도박은 경마장에서만 허용되는 등 제한을 받았지만, 1960년대 도박이 전면 합법화 되면서 대중화 시대가 열렸다. 이후 성인이면 누구나 길거리에 있는 '베팅샵'에서 도박을 할 수 있게 됐다.
다니엘은 "규제를 상당히 풀어줬다"며 "영국 도박 업체들은 정부 권력자들과 가깝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도박 중독과 같은) 도박 문제를 해결하는 기관이나 프로그램 등이 다양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심각하다"고 꼬집었다. 또 자신처럼 실적이 좋은 도박사의 베팅을 거절하거나 제한하는 등의 문제도 있다고 지적했다.
(BBC)